위상기하학으로서 의미체 한 줄 전집

유클리드 기하학이 위상기하학으로 넘어갈 때 다면체 논의는 더 이상 정형을 주제로 하지 않고,  그 정형이 붕괴되는 양태에 대해 논하게 된다.  그러니 어떤 결정의 다면체적 전개가 아니라,  그 결정의 다면체를 구성하는 요소를 재현하는 '위상'이 연구되는 것이다.  이제 부터 다이어그램은 그저 상상을 용이케하기 위한 것일 뿐 본질이 아니다. 도너츠 위상 도표는 도너츠의 두깨나 길이 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사실 이 상관없음의 인상 자체가 위상 기하학의 핵심 감성이다.

의미체 논의를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이러한 위상기하학적 다면체로 넘길 때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 우선은 다면들의 고유성을 적잖이 포기하게 된다.  즉,  의미소의 영토 개념이 기각된다.  한 면에 고정적인 한 의미소를 지정하고,  면의 만남과 면의 불발되는 만남을 해석하여,  렉톤 까지 끌어내는 역추적은 더는 시의 적절한 것이 아니게 된다. 의미소 자체도 한 위상 일뿐이므로 다른 의미소를 배타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 묘사가 아니게 되고,  자연히 이를 통해서 자신을 긍정하는 영토 개념의 의미소는 전제부터 부정당하게 된다.

그대신 우리가 갖는 개념은 대칭 자체의 성질이다. 대칭이 결정의 핵심이라는 것은 여러 방식의 수학으로 증명되는 것인데, 결정 자체가 삭제되기에는 실증적으로 형태들이 너무 많으므로,  이것은 시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대칭을 새롭게 사유하는 방식이 시도된다. 

위상기하학적 대칭의 사유는 면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이는 의미소를 탈영토화 자체로 바꾸어버린다.  탈영토가 아니라,  탈영토화이다.  위상을 전재하는 다면체의 최소,  최대,  극미,  극한의 요소들이 정형을 대신하여 무대에 오르게되는 것이고,  이것은 정보로서 형에 기입된다. 그리고 계속 비구현적 정보로서 있는 것이지,  구현적 실체로서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의미소가  갖던 자율성이 상당히 규격화되는 것일 수 있다.  그 면에서 만큼은 경계가 있을 망정 다른 면과 동등하게 동등한 물성을 근거로 발언하던 의미소가 이제는 달라지게 된다.  경계는 이제 없고,  특이점이 있다. 동등한 물성이란 이제 없고, 그 특이점에 해당하는 치만이 있다.  종전과는 반대로,  위상 기하학에서는  이 추상적인 비구현성 가장 구체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이는 다분히 패러독스적인 상황인 것이 맞다.

위상기하학적 의미소는 물적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치로서 의미체라는 전체 위상의 국소 위상들이 된다. 나라는 의미체를 구성하는 것은 내가 밟았던 구현적인 땅,  구현적인 책. . . 즉 구현적인 숙명이 아니라,  어떤 값들로 표현될지도 모를 한계적 사건들로서  비구현적인 논리 항들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성적으로 파악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는 것이 의미체에 대한 합당한 갱신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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